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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의 한 해(2):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1. 우리 교회의 비전의 핵심은 동행(Fellowship)입니다그 근거가 되는 말씀이 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두 제자에게 한 낯선 사람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그는 그들이 근심하고 걱정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 두 제자는 예수님을 만나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하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누구는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고 누구는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여 근심하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4:25)라고 말하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말씀으로 메시야의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행한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 한 마을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데, 바로 그때 그들은 그 낯선 이가 예수님이신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24:30-31)

 

우리 교회는 바로 이 말씀 가운데 제자들이 식사를 나누기 전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이미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과 믿음의 삶은 주님의 동행, divine fellowship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 그런데 그렇게 주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알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주님이 항상 우리과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될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위에서 함께 읽은 말씀대로 예수님과 식사를 나눌 때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요, 살아계힌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될 때가 어쩌면 너무 유치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순간이지만, “밥을 먹을 때” & “식사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스탠리 하우어워스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자신의 정신을 샅샅이 분석하거나, 계시를 기다린다며 손을 꼭 맞잡고 눈을 감을 채, 원시 종교의 주술 같은 것을 외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빵을 나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만나기로 택한 곳이며, 우리의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는 곳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빵을 나눈다.” 

바로 밥을 먹고 빵을 나눌 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것은 단순히 생존에 대한 요청이나 요구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고, 그 음식이 준비된 시간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먹고 마시기에 차고 넘치고, 배부르고 기름지며 며칠 동안 먹을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일용할 양식, 곧 하루 우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칼로리의 음식과 3끼, 건강을 지킬만큼의 음식만을 달라고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을 더 많이 만난 것이 아니고, 음식을 배터지도록 먹는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음식을 하나님께 허락받는 중요한 의미는 음식의 양이 아니라, 영적인 질(의미)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통해 끼니를 떼웠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이나 그 만나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적당량을 하나님께서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만나는 곧 매일 하나님이 보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만나를 모으면서, 만나를 가지고 식사를 차리면서, 또한 만나를 가족이 함께 모여 먹으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며 기도했고,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기뻐하며 축복했습니다.

 

3. 그러나 지금 저와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에서 받았던 만나와 메추라기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저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모양과 맛, 종류가 조금 달라졌을 뿐,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나가 내린지 3000년이상이 지났다고 지금 저와 여러분이 3끼에서 5끼를 먹도록 진화하거나 2000kcal를 먹는 인간에서 4000-5000kcal를 먹는 존재를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딱 일용한 양식일뿐입니다.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3끼의 식사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매번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 놓고, “일용한이라는 표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옷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입으려고 합니다.

추운 날 따뜻하고, 더운 날 시원하게 보낼 집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도 평생 살지 못하는 집에서 너무도 편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재산과 물질도 우리가 어려움 없을 정도로 살아갈 금액이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일용할 정도가 지나치게 많은 재산과 물질을 쌓아 올려 놓고 살고자 합니다.

 

일용하지 않은 곳에는 절대로 하나님의 임재는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만나를 하루만 몰래 저장해 두어도 썩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용한 것, 자족하는 것,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에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있는데 우리 인간이 일용한 것을 넘어 욕심과 이기심으로 썩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썩고 있는 그 빵은 원래 굶주린 이들의 것입니다. 몇 번 신지 않아 버려진 여러분의 침대 아래 곰팡내를 풍기고 있는 그 신발은 원래 신발 없는 이들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옷장에 쌓여 있는 입지 않는 그 옷들은 원래 헐벗은 이들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금고에서 값이 떨어지고 있는 그 돈은 원래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 새로운 신앙 계획을 세워 나가는 첫 주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먼저 여러분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복은 일용할 정도의 것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신앙을 결단하십시오. 더불어 혹여 하나님이 몇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신다면, 그 재산과 시간, 양식과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에 감사해 하지 마시고, 성 바실리우스의 설교처럼, 일용한 것을 벗어난 하나님의 선물들이 썩지 않고 버려지지 않으며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베푸시고 나누시고 거저 주는 삶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며,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네'라고 확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일성수를 지키는가? 또 다른 하나는 저가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를 돕는가? 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일용할 양식의 축복 그 이상을 받은 자들이라 생각됩니다. 2018이제 베풀고 나누고 버리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의 일용할 양식으로 한 해 분명히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 결단으로 나아가는 올 한 해와 하루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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