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다
- 김행숙
얘야, 구닥다리 살림살이
산뜻한 새것으로 바꿔보라지만
이야기가 담겨 있어 버릴 수가 없구나
네 돌날 백설기 찌던 시루와 채반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있고
투박한 접시의 어설픈 요리들,
신접살림 꾸리며 모은 스테인리스 양동이
어찌 옛날을 쉽게 버리랴
어린시절 친구들이 그립다
코흘리개 맨발의 가난한 시절
양지쪽 흙마당의 웃음소리
오늘이 끝인 양 마침표 찍고
내일부터 새 목숨 살아갈 순 없지
유유한 강물로 흐르면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가는 것
지난 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도 끊을 수 없는 거란다
미국 처음 와서 산 차를 16년 넘게 타고 떠나 보내던 날, 어찌나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던지… 차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별로 없는 제가 그럴 줄 몰랐습니다. 사람도 아닌 기계에 나름 정을 준 걸까요? 그 차에 담긴 이야기 때문이지요. 미국 오고 6개월 간 차가 없어서 남들 신세만 지다가 드디어 차 키 받던 날의 그 기쁨,
밤샘 숙제하고 뉴욕으로 교회 다녀 올 때 꾸벅꾸벅 졸던 주인을 지켜준 녀석에 대한 고마움,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 웃다 싸우다 울다 잠들었던 수많은 날들, 마음 무너지던 날 혼자 차 몰고 무작정 나갔으나 갈 곳 없어 주차장에서 한참 울던 기억까지…
시인의 어머니 마음이 꼭 그랬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발 좀 버리고 새것으로 사시라고 말씀드려도, 거기 구석구석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어찌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나요. “지난 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도 끊을 수 없는 거란다.” 사람과의 만남을 업무나 이익의 관계에서만 생각하는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 말씀인가요.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시를 읽으며 빌었습니다.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은 교회가 되기를.
(손태환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