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 올라가는 양지녘
바람이 불러모은 마른 영혼들
졸참나무잎서어나무잎낙엽송잎당단풍잎
느티나무잎팽나무잎산벚나무잎나도밤나무잎
그 이불을 덮고
한겨울 어린 풀들이
한 열흘은 더 살아간다
화엄사 뒷산
날개도 다 굳지 않은 날벌레들
벌써 눈뜨고 날아오겠다
그 속에 발 녹인 나도
여기서 한 닷새는 더 걸을 수 있겠다
-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
군대 시절, 판초 우의 하나 덮고 철원의 겨울 산에서 잠을 청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주변에 나뭇잎들을 끌어다 추운 몸을 덮었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나뭇잎도 이불이 될 수 있다는 걸. 추운 마음 덮어주는데 꼭 그리 좋은 이불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눈 밝은 시인에게 그 이불이 보였나 봅니다. 덕분에 ‘한 열흘은 더’ 살아가는 어린 풀들도요. 띄어 쓰지 않고 이어진 나뭇잎들이 아주 긴 이불이 되어 그 아이들을 포근히 덮어 줍니다. 그 따뜻한 기운에 봄인 줄 착각한 날벌레들 눈비비며 날아오겠네요.
남편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에 살던 룻에게 보아스가 넉넉한 이불이 되어 주었지요.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룻3:7). 교회가 가슴 시린 이들에게 이불이 되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이불 덮고 마음 녹인 후, 일어나 ‘한 닷새는 더 걸을 수’ 있게 말입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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