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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길가의 돌/ 정종수




나 죽어 하느님 앞에 설 때

여기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물으시면

나는 맨 끝줄에 가 설 거야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슬그머니 다시

끝줄로 돌아가 설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

끝줄로 가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


정말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 보라시면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할 거야


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워

신작로 끝에 옮겨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 정종수, <길가의 돌>


정말이지, 만일 하나님께서 나중에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어쩌나요? 시인은 맨 끝줄에 가 서겠다지만, 저는 아예 도망가 버릴 지도 모릅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고마울 판입니다. 그래도 뭔가 하나 꺼내 놓아야 한다면, 시인은 언젠가 길가에 돌멩이 하나 옮겨 놓은 일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하겠답니다.


사순절을 맞아 기후정의를 위한 <40일 초록 발자국>을 시작하며 이 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 하나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법을 바꾸고 정치인을 바꿔야지, 우리가 이런다고 바뀌지 않아. 이거 자기 만족 아니야? 이런 말들이 - 제 안에서도 - 종종 들려옵니다. 대단한 일을 하려는 거 아닙니다. 그저 누가 다칠까 돌멩이 하나 옮겨 놓는 마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시인의 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들리네요. “고맙구나. 내가 창조한 돌 하나, 엉뚱한 자리에 있는 돌 하나, 잃어버린 돌 하나 살포시 옮겨 놓았으니 참 고맙구나.”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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