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나무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 문정희, <나무학교>


1년을 통째로 도둑맞은 거 같은데 또 한 살 먹는다니, 좀 억울하지요? 환불요청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쉽게 지나간 해가 한번이라도 있었나 싶지만, 올해는 정말이지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누구 말대로 마스크 쓰다가 한 해가 다 가버린 듯 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한 살 더해가니 야속할 수 밖에요.


그러다 만난 이 시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합니다. 세월을 겉으로 내색하거나 뻐기지 않고 속에다 새겨 넣은 나무에게서 참 어른을 봅니다. 정재찬 교수의 말처럼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르른 나무가 되어 쉴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p.198)


2020년이라는 한 해를 속에다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그 그리움을, 마스크를 쓰고 입을 다물어야 했던 그 침묵을, 불안 속에 드렸던 그 간절한 기도를, 우리의 약함과 악함을 돌아보았던 그 참회를,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했던 그 깨달음을, 부디 속에다 오롯이 새기면 참 좋겠습니다.


내년에 속은 더 깊어지고 겉은 더 울창해질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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