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난파된 교실/ 나희덕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가만히 있으라. 그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조끼를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을 해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그들이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조끼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 나희덕 <난파된 교실>


교회는 기억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없이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아말렉이 그들에게 행한 악행을 기억하라고 하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일도 기억하라고 합니다. 젊은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 사신 사건을 기억하라고 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 하던 것과 광야 생활을 끊임없이 기억하듯, 우리도 기억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고, 6.25를 기억하고, 4.19와 5.18을 기억하고, 그리고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굳게 믿고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있었던 그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에도 까르르 웃던 아이들이 나비가 되어 버린 그 날을 기억합니다. 생떼같은 자식들이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던 부모들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 부었던(지금도!) 그들의 무정함을 기억합니다.


난파된 교실의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망각을 거부하는 이들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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