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이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고 시퍼렇게.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건만 눈은 버젓이 살아 있습니다. 어쩌면 떨어졌기에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 눈에 대고 기침을 하자고, 가래를 뱉자고 시인 김수영은 말합니다. 순백의 눈 위에 가래 침을 뱉자는 심보는 뭘까 싶지만, 그 또한 살아 있음에 대한 선언일 터. 오로지 상승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수없이 추락을 경험했을 ‘젊은 시인’에게 김수영은 마음 놓고 기침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세상 질서에 순응하느라 고여있던 가슴 속 언어를 마음껏 내뱉어, 너의 살아 있음을 증명해내라고.


함민복 시인은 <물>이라는 시에서 소낙비를 보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소낙비 쏟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수직을 경험해 보셨으니/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르실 수 있는 게지요/ 수평선에 태양을 걸 수도 있는게지요” 떨어진 눈은 살아있고, 떨어진 비는 수평으로 흐릅니다. 추락은 끝이 아니며 오히려 살아있어 흐를 수 있는 자유의 출발선입니다. 어디선가 추락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시를 건넵니다. 침 좀 뱉으셨을 갈릴리 예수의 이름으로, 추락 후 살아나신 예수의 이름으로.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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