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저 사람의 얼굴
궁지에 몰린 저 사람의 얼굴
어떤 대답이든 나오기를 재촉당하고 있는 저 얼굴
늙어가는 한 중년 남성의 얼굴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던
평온한 인쩰리겐찌야의 얼굴
애써 태연을 가장하지만
어딘가 한 구석 허물어지고 있는 얼굴
이마부터인지, 눈인지, 코인지, 입술인지
짓궂은 누군가 힘주어 실밥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늙은 얼굴 늙어가는 사람의 저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우는 사람의 얼굴, 차라리 울어나 버리고 싶은 얼굴
막 울음보가 터지려 울끈불끈 실룩거리는 사람의 얼굴을 닮아간다
이선영, <늙는 얼굴>
분명 내 사진을 찍었는데 낯선 중년 남성이 보입니다. 내가 맞나 싶어 안경을 벗고 자세히 봅니다. 옆에 선 사람들이 제 가족인 걸 보니 제가 맞긴 맞나 봅니다. 제 딸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저만 잘못 나온 건 아닌 게지요. 웃지 않으면 너무 심각해 보이고, 애써 웃으면 어색한 저 얼굴이 제 얼굴 맞답니다. 하는 수 없지요. 인정하는 수 밖에.
아마도 청문회 한 장면이겠지요. 궁지에 몰려 “어떤 대답이든 나오기를 재촉당하고 있는” 저 얼굴. 태연한 척 하지만 “어딘가 한구석 허물어지고 있는" 그래서 이미 ‘늙은 얼굴'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늙는 얼굴.” 읽는 내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그게 내 얼굴이었구나 깨닫게 되는 서늘한 시.
함석헌 선생은 세상에 ‘참 얼굴' 하나 보러 왔다 했습니다. 그 얼굴 하나 보는 것만으로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 “가슴이 큰 바다가 되는” 그런 얼굴 말입니다. 제자들이 산 위에서 본 예수님의 얼굴이 그랬겠지요. 그 얼굴은 제자들의 얼굴에 영원한 흔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가끔 그런 얼굴을 봅니다. 어떤 말씀에도 반응하지 않는 저 굳은 얼굴들 사이로 보이는, 은총의 빛 머금은 온화한 얼굴. 늙었으나 늙지 않은 얼굴. 질투나는 그 얼굴. 너무나 닮고 싶은 그 얼굴.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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