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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늙은 꽃 /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 문정희, <늙은 꽃>


이런, 아침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니 뺨에 주름이 논두렁마냥 깊이 패였습니다. 엎드려 잤나 봅니다. 어제 밤 몰래 바른 아내의 ‘주름개선 기능성 화장품’은 아무 기능을 못한 게 틀림없습니다. 몇 번만 두드리면 금새 제자리로 돌아오던 청년시절의 탱탱함은 어디로 가고, 몇 시간이 지나도 논두렁은 펴질 생각을 안 합니다. 아,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을 나는 질투합니다.


늙은 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꽃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거나 쌓아두는 법이 없지요. 언제 피든, 어떤 색으로 피든, 꽃은 한 번 필 때 모든 것을 다 써 버립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탕진하고 사그러지기에 “꽃의 생애는 순간"입니다. 내일을 ‘분별’하느라 오늘의 ‘향기'를 잃어버릴 수 없다고 믿는 꽃에게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다음을 따지고 계산하느라 지금을 향유하며 사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다 써 아름다울 기회를 어느새 놓쳐버린 건 아닐까요. 늙음의 징후는 주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향기없이 분별만 하고 있는 내 입술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른 말로 욥의 잘못을 분별하려던 그 친구들에게, 향유옥합 깨뜨린 여인에게 분노하며 값을 계산하던 제자들에게, 그리고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을 잃은 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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