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 나희덕, <다시, 다시는>
나희덕 시인이 10년 전 교통사고로 잃은 동생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합니다. 이번 10.29 참사에 대한 시는 아니지만, 갑자기 누군가를 잃어버린 이들의 황망함이 가슴 한 구석 저리게 전해 옵니다. 영정 사진도 없는 합동 분향소와 '사망자 몇 명'이라는 숫자로만 기억될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다 듣지도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거기 없지 않고 있어야 할 젊은이들의 이름 말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조금 더 울고 조금 더 슬퍼하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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