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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담론(痰論) / 윤성학



결린 데만 결리는 게 아니라

오른쪽 등허리 위쪽에서 어깨를 지나

뒷목으로 올라갔다가

왼쪽 허리까지

두루두루 나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

그는 죽어 없어지지 않고

한번 몸 안에 들어오면 나가지 않는다

그게 담이다

담이 들어 뻐근한 날

벽에 등을 치며 묻는다

안에 들여서는, 내보내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것이

진정 담 하나뿐인가

그뿐인가

쿵쿵, 묻는다

이 안 어딘가의 그대에게


  • 윤성학, <담론(痰論)>

어찌나 공감이 되는 시인지. 유학생활하면서 담이 들지 않고 지나간 달이 거의 없을 정도였지요. 한번 담이 들면 샤워를 하고 마사지를 하고 별짓을 다해도 절대 나가지 않고 두루두루 몸 안에서 돌아다녀요. 목이 옆으로 돌아갈 정도가 되면 뻐근한 정도가 아니죠. 그 고통은 아는 사람만 알아요. 신기하게도 학교 공부를 그만두니 담도 나가더군요. 그래도 신경 많이 쓰는 날들이 이어지면 요즘도 가끔 찾아와요.


제발 좀 나가라고, 벽에 등을 치며 애원을 했었는데, 시인은 그 와중에 다른 걸 묻네요. “안에 들여서는, 내보내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것이/ 진정 담 하나뿐인가.” 누군가를 향한 미움은 어떤가요. 한번 들어오면 웬만해선 나가지 않아요.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요. 걱정은 또 어떻고요.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도대체 나갈 생각을 안해요. 앉으나 서나 누우나 “그는 죽어 없어지지 않고" 나를 괴롭혀요. 


그런데 신기하지요. 좀 쉬니까 어느새 담이 나가더군요. 쉼을 얻으니 숨을 쉬게 되고, 숨이 들어오니 담이 나가요. 아, 숨만 잘 쉬어도 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일까요? 마음 속에 두려움을 내보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그러셨잖아요.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그러고보니 담을 내보내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물어버리기도 하셨네요.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시고"(엡2:14). 


이상, 담론(痰論)이었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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