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마디, 푸른 한 마디 / 정일권

최종 수정일: 5월 31일



피릴 만들기 위해 대나무 전부가 필요한 건 아니다

노래가 되기 위해 대나무 마디마디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린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하다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사랑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눈부처로 모신 내 두 눈 보면 알 것이다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샘에 얼비치는 눈물 흔적만 봐도 모두 다 알 것이다.


- 정일권, <마디, 푸른 한 마디>


목사로 살면서 가장 괴로운 일 하나를 꼽으라면,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 말하고 싶지 않은 날도 말해야 하고, 말할 것이 없는 날도 말해야 하죠.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날은 골방 속 묵언수행이 절실해집니다. 어느 목사님은 설교단에 올라가 “오늘은 할 말이 없습니다”하고 내려왔다는데, 저도 평생 한 번은 해 보고 싶은 말입니다.


작가 박총은 “책읽기는 내 안에 깃든 언어의 농도를 높이는 작업”이라 했습니다. 내 안에 깃든 언어의 농도가 낮으니 말이 장황할 수 밖에요. 피리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 한 마디면 족하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푸른 한 마디면 족한 법인데 말입니다. 구구절절 사랑 고백은 얼마나 재미없나요. “고백하기에 두 눈도 바다처럼 넘치는 문장”이라잖아요.


긴 말 아니어도 그대 사랑하는 내 마음 알려 줄 한 마디, 중언부언 아니어도 ‘네 말이니 믿겠다’ 할 한 마디, 태풍 천둥 벼락 몇 개 품은 대추 한 알같은 한 마디, "마디, 푸른 한 마디"면 족합니다. 이런, 또 말이 길었네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0:19).


(손태환 목사)


*사진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281024000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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