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치떼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떼를 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 있다.)


- 마종기,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제목만 읽으면 웃음이 나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진한 국물 맛이 나는 시입니다. 국물만 내고 버려지는 며루치에게서, 시인은 온몸을 던져 시대의 아픔을 겪은 후 이제는 쓸모 없다고 버려지는 사람들의 슬픈 얼굴을 봅니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연극 무대에서 극중의 아버지가 이 시를 낭송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에게서 국물만 내고 버려지는 며루치를 본 것이지요. 어디 아버지들뿐일까요?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사는 참전 군인들과 이산가족들, 제주 4.3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자들과 가족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고문 당한 젊은이들…. 우리 사회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그들을 사람들은 금새 잊었고 버렸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마치 그들 없이 우리가 만들어낸 것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전하며 스러져 간 우리 믿음의 선조들, 낯선 땅 오직 부르심에 순종하여 전 생애를 받친 선교사들, 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평생 수도 없이 무릎 꿇었던 신앙의 선배들… 그들의 헌신이 국물만 내고 끝이 되지 않도록, 시인의 제안에 아멘이라도 외치고 싶습니다.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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