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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복효근, <버팀목에 대하여>


연초에 아버지 기일을 맞아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으실 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싶어, 매년 1월이면 마음이 쓸쓸해지네요. 추도예배 중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넘어지려는 나를 여전히 버티게 해 주는 그를 만지고 느끼는 일이라는 것을.


버팀목에 의지하여 서 있는 나무에게서 시인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우리 모두를 봅니다. 죽은 나무가 산 나무의 버팀목이 됩니다. 보이지 않고 사라진 것들에 의해 지금 여기 보이는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떠나간 가족, 사라진 이웃, 보이지 않으나 저 멀리 누군가에 기대어 우리는 큰 바람에도 버티고 삽니다.


서로 얼굴도 잘 못 보고 사네요. 보이지 않아도 나를 세워주는 버팀목들이 만져지시나요? 이제 내 차례입니다. 십자가라는 버팀목 덕분에 싹 틔우고 꽃피우며 살고 있다면, 그것은 너도 누군가의 버팀목으로 살라는 소명일 것입니다. 이윽고 삭아 없어지더라도,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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