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장석남, <번짐>


어릴 적 서예를 했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아마 그 때 형성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바르게 쓰도록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그래도 가끔 선생님 안 계실 때 장난을 쳤습니다. 먹을 갈고 붓으로 찍어 한지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그 번짐을 오래도록 보곤 했습니다. 먹향과 함께 퍼지는 그 번짐의 고요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애틀란타 총격 사건과 함께 슬픔과 분노가 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확산과 함께 아시안 증오 범죄가 급증했고,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 상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아시안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기 힘든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라는 악의 번짐을 막고, 사랑과 포용이라는 선의 번짐을 이어가야 합니다. 꽃이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이 번져 가을이 되듯,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우리의 눈물이 번져 노래가 되고 기도가 번져 희망이 되도록. 하나님 나라가 번져 온 세상 가득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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