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이문재, <봄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에요. 읽고 있으면 그 장면이 눈에 그려지고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1분 1초가 급한 배달을 멈춰 세운 건, 글쎄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 노인이 아니라 청년이 그러고 있으니 시인이 그 찰나를 놓칠 리가 없지요. 찰칵찰칵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청년을 시인은 사진처럼 생생한 언어로 담아냅니다. 그러고 보니 목련은 청년을, 청년은 시인을 멈춰 세웠네요. 시인은 우리를 이 시 앞에 멈춰 세웠고요.
시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시에요. 시는 세상의 흐름과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죠. 너무 급히 그렇게 달리지 말라고, 짜장면 불어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이 봄날의 찬란함도 지나쳐 갈 만큼 급한 일 맞느냐고, 시는 우리의 조급한 마음에 제동을 겁니다. 시급 몇 천원 날리는 일이 작은 일 아니지만, 잘못하면 아르바이트 잘릴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마음 복잡해지지만, 아주 잠시라도 멈춰 서 목련의 유혹에 빠지는 철없음도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매일 부아앙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이 피어난 자리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찍은 사진을 교우들에게 배달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그저 그런 날이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이 될 거에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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