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봄 /이성복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여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복, <봄>


한겨울에 무슨 봄이냐 하시려나요? 겨울이니까 봄을 기다리지요.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봄이라니 싱겁게 들리지만, 유신독재 시절 쓰인 시라면 이해가 되실 거에요. 꿈꾸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어요.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는 확신과 결의가 느껴지시나요? 이해인 수녀님은 가난한 자들이 가진 건 기다림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마저 잃고 주저앉은 이들에게 시인은 저기 오는 눈부신 봄을 보라고 가리킵니다. 봄은 보는 것이라고, 봄은 봄이어서 봄이라고.


속히 오지 않는 봄이 야속한가 봅니다. 이곳 저곳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그제서야 눈 부비며 더디게 오는 듯 합니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우리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그러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픈데,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기다림마저 잃은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의 봄은 어디서 뭘 하시나 야속합니다.


더디게 더디게, 그러나 마침내 옵니다. 우리의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성령의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 예수, 우리의 봄이 저기 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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