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에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 이대흠, <비가 오신다>
서울이나 광주 분들이 이 시를 들으면 서운하시려나요? 도심지라고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의 뜻을 모른다니, 과한 표현이라 질책하시려나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비는 그냥 오기만 하는 게 아니라,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기도 하고 ‘씩씩거리며’ 혹은 ‘터벅거림'으로 온다는 것쯤 알아야 그 말의 의미를 아는 거라고, 시인은 꽤 단호하게 말합니다. 요즘은 LA에도, 텍사스에도 눈이 가끔 온다지요? 그래도 ‘눈이 온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지는 못할 겁니다. 한국의 철원이나, 시카고 쯤 살면 모를까.
‘은혜 받았다’는 말의 뜻을 우리는 알까요? 설교 후 인사말로 건네는 그 권사님도 은혜 받은 건 받은 것이겠지만, 은혜는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매서운 겨울, 한 줌의 햇살처럼 오지요. 한 걸음도 더 내딛을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받기도 하고, 그 벼랑에서조차 떠밀려 널부러진 바닥이나 아예 바다 저 밑 구덩이 속에서 받기도 합니다. 예배당에서 받기도 하겠지만, 술집 인근 어느 뒷골목에서 받기도 합니다. 아, 상투어가 된 ‘은혜 받음'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알게 될까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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