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복효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지요. 내 허기진 배 속까지 알아채는 것은 물론, 친구 자존심 상할까 봐 ‘책가방 지퍼 열렸다'고 말하며 슬쩍 봉투를 넣어주는 세심함까지. 아무도 없는 썰렁한 방까지 따라온 건 근사한 친구 선재의 온기 아니었을까요.
단벌 양복으로 1년을 버티던 전도사 시절, 옷에 뭐 묻었다며 슬쩍 양복 치수를 재 가신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지지리 궁상맞던 유학생 시절, 부흥회 강사로 오셨던 목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조수석 햇빛가리개 뒤에 봉투와 편지가 있더군요. 가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을 만들어주었던 추억 속의 ‘선재'가 내게도 있지 않았나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예수님께 붕어 다섯 마리 드렸던 그 아이 이름이 혹 ‘선재’는 아니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선재’가 많은 교회 되길 바랍니다. 아니, 내가 누군가에게 가장 따뜻한 저녁을 만들어주는 선재로 살아가길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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