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시인의 용도 2/ 마종기

2025년 4월 26일
2분 분량


하느님, 내가 고통스럽다는 말 못 하게 하세요.

어두운 골방에 앉아 하루 종일 봉투 만들고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 노파를 아신다면,

하느님, 내가 외롭단 말 못 하게 하세요.

쉽게는 서울 남쪽 변두리를 걸어서

신흥 1동, 2동 언덕배기 하꼬방을 보세요.

골목길 돌아서며 피 토하는 소년을 아신다면

엄마를 기다리는 영양실조도 있었어요.


하느님, 내가 사랑이란 말 못 하게 하세요.

당신의 아들이 아직 인자(人子)로 살아 있을 적에도

먼지 쓴 신자(信者)의 회초리가 드세기도 하더니

세계의 곳곳에는 그 사랑의 신자들 가득하고

신자에게 맞아 죽은 신자들의 시신(屍身),

내 나라를 사랑해서 딴 나라를 찍고

하느님 영광을 찬송하는 소리 들어 보세요.

고통도, 사랑도, 말 못 하는

섭섭한 이 시대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 마종기, <시인의 용도 2>


노회로부터 소속 목사임을 증명하는 아이디 카드를 받았습니다. 매년 받는 카드인데, 사실 쓸 일은 거의 없습니다. 별 용도가 없지만 혹시 필요할까 해서 지갑에 넣어 둡니다. 문득 오늘날 목사의 용도가 그런 건 아닐까 싶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앙도 그렇겠지요. 평소에는 별 쓸모가 없으나 혹시 필요할 때를 대비해 아주 버리지는 않고 한쪽에 보관해 두는. 


시인은 “어두운 골방에 앉아 하루 종일 봉투 만들고/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 노파”를 떠올리며 하나님께 차마 고통스럽다는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언덕배기 하꼬방”에 살며 “피 토하는 소년”과 “영양실조” 걸린 아이를 알기에 외롭다고 말하기를 부끄러워 합니다. 사랑을 말하는 신자가 다른 신자를 죽이고 “내 나라를 사랑해서 딴 나라를” 찍어버리면서도 “하느님 영광을 찬송하는” 이들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건 시인에게 차라리 고통입니다. 시인이 “고통도, 사랑도, 말 못하는/ 섭섭한 이 시대”를 살면서 그는 “시인의 용도는 무엇”인지 묻습니다. 


너무 쉽게 고통과 사랑을 말하는 우리에게 저 ‘섭섭함’은 낯선 감정입니다. 그걸 알려주는 시인이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의 용도’를 묻고 있는 그의 질문이 곧 시인의 용도일지도 모릅니다. 아픈 성도를 바라보며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늘 ‘목사의 용도’를 묻습니다. 기도 외에 뭘 해야 할 지 몰라 질문을 던지지만 늘 답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묻지 않으면 정말 쓸 데 없는 목사가 되겠지요. ‘세상을 변화시키자’며 우리의 용도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했던 교회도 이제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손태환 목사)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시치미 떼기/최승호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오더니 철쭉꽃을 뚝, 뚝, 꺾어간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불행한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누는 걸 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댓글


시카고기쁨의​교회

1-224-616-2772

info@cjcchurch.org

2328 Central Rd.

Glenview, IL 60025

  • kakao_channel
  • White Instagram Icon
  • White YouTube Icon
  • White Facebook Icon

©2020 by Chicago Joyful Community Church. 

Thanks for connecti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