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복효근, <안개꽃>
모두가 장미를 찬미할 때 안개꽃을 노래하는 시인라니요. 아예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니 그 마음 참 안갯속입니다. 오직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을 자처하네요. 아름다워지고 싶어 안달 난 이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거드는’ 존재이고 싶어하네요. 아름다움을 거드는 아름다움이로군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노래했던 한용운 시인이 떠오릅니다. 흙발로 급히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기꺼이 온몸을 내어주는 나룻배의 마음은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는 안개꽃의 마음과 다름이 없네요. 아, 여기서 떠오르는 한 사람. 신랑의 배경으로 사는 걸 존재이유로 알았던 세례 요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시의 마지막은 차라리 한 편의 기도이네요. “사랑하는 주님, 마침내 당신으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당신께 조금은 빚지고 싶습니다. 아멘.”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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