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시(詩)가 있다
집집마다 알전구가 달려 있는
서산 어물전 한 귀퉁이
알전구 옆 경고문
– 이곳 전구를 빼간 도둑님아!
너희 집은 밝으냐
오늘도 빼가 봐 –
알전구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
살아내는 일이 100촉 알전구만큼 뜨겁다
- 이명수, <알전구>
시인들은 다들 그렇게 말해요. 시는 쓰는 게 아니라 받아 모시는 거라고. 이 시를 소개한 이정록 시인은 “시는 창작이 아니라 줍는 것"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가 안 써지면 시내버스를 탄답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어디 떨어진 시가 없나 두리번거리는 거죠. 그러다 좌판에서 오고가는 '오래된 말씀들'을 줍곤 합니다. 시장(市場)이야말로 시장(詩場)인가 봅니다.
“알전구가 사라진 소켓 속 작은 어둠이 이 시를 낳았다. 얼마나 살아 펄떡이는 언어인가. 마음을 열면 도처에 말씀이시다. 필라멘트처럼 떨리는 가슴에 차곡차곡 빛의 말씀을 모셔두자.” (이정록,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중에서)
설교 준비 하다가 막막해지면 저도 밖으로 나갑니다. 길을 걸으며 하늘, 바람, 나무, 풀꽃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신기하게 막혔던 것이 풀리는 경험을 합니다. 책상에서 안 보이던 말씀을 길 위에서 만납니다. 언젠가는 그 복잡한 맨하탄 한복판에서 주운 말씀도 있었지요. “베려고 보면 풀 아닌 것이 없고, 품으려고 보면 꽃 아닌 게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다른 눈으로 보면 세상에 온통 말씀 뿐입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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