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한 줌 앞에서도
물 한 방울 앞에서도
솔직하게 살자
꼭 한 번씩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도 진흙 속에서도
제대로 살자
수 천 번 수 만 번 맹세 따위
다 버리고 단 한 발짝을
사는 것처럼 살자
창호지 흔드는 바람 앞에서
은사시 때리는 눈보라 앞에서
오늘 하루를 사무치게 살자
돌멩이 하나 앞에서도
모래 한알 앞에서도
도종환, <오늘 하루>
뉴저지에서 목회하던 교회 이름이 ‘세빛교회'였습니다. 교회 이름을 말하면 다들 ‘새빛교회'인 줄 알더군요. “아, 새로운 빛인가 보죠?” “아니예요. ‘아 이’ 아니고 ‘어 이’예요. 세빛교회" “아, 세 개의 빛인가 보네요. 성부 성자 성령.” “그게 아니고, 세상의 빛 세빛교회요.” 교회 이름을 이렇게 자꾸 풀어 설명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름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더군요. 무려 ‘세상의 빛'이라니. 나는 일상의 빛도 못 되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는 일의 소중함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
시인 도종환은 같은 제목의 다른 시에서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하루를 함부로 살면서 미래와 온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의 거품을 인정합니다. 일상의 빛이 되지 못하면서 세상의 빛이 되기를 꿈꾸는 것처럼. 그래서 시인은 햇볕 한 줌, 물 한 방울, 어둠과 진흙 앞에서도 ‘솔직하게' ‘제대로' 살기를 다짐합니다. “돌멩이 하나 앞에서도, 모래 한알 앞에서도" 사무치게 정성껏 살기를 마음 먹습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하며 ‘하나님 앞'을 느끼는 자리가 꼭 그랜드 캐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앞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돌멩이 하나 모래 한 알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선 듯 오늘 하루를 사무치게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주기도의 이 대목을 늘 기억한다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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