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세상이 뜨겁습니다. 남을 밟고서라도 올라가려는 욕망의 열기가 세상을 달굽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불이 되어 만납니다. 뜨거운 불들이 만나다 보니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저기 “숱이 된 뼈 하나가”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이 불같은 세상에서 시인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나자’ 합니다. 서로 더 오르려 애쓰는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르고,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흐릅니다.
“나를 물로 보지마!” 외치며 불을 내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물이니 나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자, 그 물 시원하게 들이킵시다. 우리도 물이 되어 흘러갑시다. 갈증으로 타는 목 적셔주고, 분노로 끓는 가슴 식혀주며, 오래 황폐하였던 땅 꽃 피우면서 낮게 더 낮게 흘러갑시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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