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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작성자 사진: heavenlyseedheavenlyseed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기형도, <우리 동네 목사님>


읽을 때마다 늘 궁금하여 묻고 싶어집니다.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철공소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 한참이나 했던 걸까요. 저 무자비한 망치질에 두들겨 맞는 양철 홈통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떠올렸을까요? 몸을 써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가 부러웠을까요? 아니면, 교회에 망치를 대야 할 어떤 구석이 있었던 걸까요?


교회당 꽃밭은 마구 밟고 다니면서도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말에는 맹렬한 분노를 내뿜는 교인들, 폐렴으로 아이를 잃은 목사의 슬픔에 공감하기보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혹은 이제는 내보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듯, 은밀한 눈빛과 고개짓을 주고 받는 사람들… 이 시의 화자는 하늘에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는 것을 보며 이런 어두운 현실에도 ‘맑은 별'이 켜지길 기대했던 걸까요?


종교개혁주일을 앞두고 왜 이 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래 전 마음에 새겼던 큰 소원 다시금 빕니다. 능력의 종, 큰 교회 유명한 목사 말고 “우리 동네 목사님” 되게 해 달라고. 우리 교회가 누구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우리 동네 교회’ 되게 해 달라고. 교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지 않아도 좋으니 교회의 하늘에 맑은 별 하나둘 밝혀달라고.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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