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이마 /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 허은실, <이마>


“열이 있나?” 엄마의 손이 내 이마에 닿던 순간, 그 잠시의 고요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는 제자리를 찾곤 했습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당신의 이마를 짚으시던 엄마 덕분에 나는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눈을 감고 걸을 수 있었지요. 내게 조금이라도 선량한 구석이 있다면, 그건 어릴 적 내 이마에 얹어지던 엄마의 손바닥 덕분일 겁니다.


시인은 아마도 혼자 앓고 있었나 봅니다. 밤새 끙끙 앓으며 자다가 일어나 서럽게 웁니다. 자기 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지요.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아무도 이마에 손 얹어주지 않아 스스로 팔을 얹고 있는 그 자세가 얼마나 서늘하고 서러웠을까요.


열이 있나 보려면 이제 차가운 기계를 갖다 댑니다. 열이 있다 하면 손을 얹기보다 뒷걸음을 치는 시절입니다. 아픈 누군가의 이마에 손을 얹는 행위가 얼마나 정겨운 일이었나, 생각하면 아득해집니다. 사람들이 자꾸 뾰족해지는 건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겨 본 경험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마의 크기를 손바닥 크기와 비슷하게 만드신 이의 마음을 헤아려야겠습니다. 교회가 아픈 누군가의 이마에 얹는 손이 되기를, 잠시 내 이마에 손을 대 보며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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