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아비가 되면 손발 시리고
가슴이 솥바닥처럼 끄슬리는 거여.
하느님도 수족 저림에 걸렸을 거다.
숯 씹은 돼지처럼 속이 시커멓게 탔을 거다.
목마른 세상에 주전자 꼭지를 물리는 사람.
마른 싹눈에 주전자 꼭지처럼 절하는 사람.
주전자는 꼭지가 그중 아름답지.
새 부리 미운 거 본 적 있냐?
주전자 꼭지 얼어붙지 않게 졸졸졸 노래해라.
아무 때나 부르르 뚜껑 열어젖힌 채
새싹 위에다 끓는 물 내쏟지 말고.
이정록, <주전자 꼭지처럼>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학교]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듯 시를 쓰고 엮은 시집입니다. <주전자 꼭지처럼>이라는 이 시도 그 중의 하나인데, 가슴 시리게 살아가는 어미 아비의 마음을 ‘하느님도 수족 저림에 걸렸을 거’라는 말로 풀어냄이 참 놀랍지요. 자식들 생각에 하나님 속도 ‘숯 씹은 돼지처럼’ 시커멓게 탔을 거라니, 그 표현에 웃음이 나고 그 속뜻에 마음 한 구석 시려오네요.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목마른 세상에 주전자 꼭지를 물리는” 시원한 사람, “마른 싹눈에 주전자 꼭지처럼 절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침을 줍니다. 금새 화를 내며 “아무 때나 부르르 뚜껑 열어젖힌 채 새싹 위에다 끓는 물 내쏟는” 성급한 사람은 되지 말라고 권합니다.
이 땅의 교회 생각에, 고통 중에 부르짖는 백성들 생각에 수족 저림에 걸리고 속이 시커멓게 탄 하나님 생각을 합니다. 주전자 꼭지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시는 그분 마음, 이제 좀 헤아리며 살면 좋겠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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