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지구의 일 / 김용택

최종 수정일: 9시간 전


해가 뜨고

달이 뜨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잎이 피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땅에 떨어져서 흙에 묻혀 썩고

그러면 거기 어린 살구나무가 또 태어나지

그 살구나무가 해와 바람과 물과 세상의 도움으로 자라서

또 살구가 열린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신기하니?

작은 새들이 마른 풀잎을 물어다가 가랑잎 뒤에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알을 낳아 놓았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니

다 지구의 일이야

그런 것들 다 지구의 일이고

지구의 일이 우리들의 일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 돼


- 김용택, <지구의 일>


신학생 시절, 다들 하나님을 위해 뭐든 할 것 같은 열정에 불타던 때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이런 구호와 고백이 넘치던 시절에 어느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그러셨습니다. “부디 최선을 다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던 젊은 신학생들에겐 참 김빠지는 소리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지 말고, 그분께 방해가 되지 않게만 하라니. 그 이해할 수 없던 말씀에 요즘에서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던 그 일들이 얼마나 많이 그분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었는지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시인은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지구는 가만히 두면 매년 살구를 맺는 나무와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알을 낳는 새들을 보게 해 준다고, 그게 다 지구의 일이라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일을 방해하지 않는 거라고. 최선을 다해 그래야 한다고. 지구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니까. 하나님의 그 일이 곧 우리의 일이니까.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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