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진경 / 손세실리아


북한산 백화사 굽잇길


오랜 노역으로 활처럼 휜 등

명아주 지팡이에 떠받치고

무쇠 걸음 중인 노파 뒤를

발목 잘린 유기견이

묵묵히 따르고 있습니다


가쁜 생의 고비

혼자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눈에 밟힌다며


절룩절룩

쩔뚝쩔뚝


- 손세실리아, <진경(珍景)>


시를 읽는 순간 그림이 펼쳐지고, 나도 모르게 명치 끝을 만집니다. ‘활처럼 휜' 노인의 등이 ‘백화사 굽잇길’처럼 힘겨워 보입니다. 그 ‘가쁜 생의 고비,' 느린 ‘무쇠 걸음'으로 걷는 노파의 뒤를 '발목 잘린’ 유기견이 말없이 따라갑니다. 앞에서 ‘절룩절룩' 뒤에서 ‘쩔뚝쩔뚝' 아픔의 걸음을 맞춥니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반 뼘>이라는 다른 시에서 “발목 반 뼘 잘려나간 짝다리 탁자에 앉아/ 서로를 부축해 온 뼘을 이루는 기막힌 광경”을 노래했었지요. 시인은 늘 약하고 모자란 이들이 눈에 밟히나 봅니다. 절룩절룩 쩔뚝쩔뚝, 반 뼘 모자란 걸음들이 함께 발맞추며 온 뼘을 이루는 진경을 고맙게 그려냅니다.


생의 고비를 넘는 이들 곁에 못박힌 발로 함께 걸으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혼자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눈에 밟힌다며." 그분의 제자인 우리의 걸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펼쳐질 ‘진경'을 기대합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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