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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천원집/ 이대흠



우리 동네 삼거리엔 구멍가게 하나 있는데요

가게나 점방이라는 간판도 없이 한 사십여 년 장사하는 집인데요

팔순인 월평 할머니가 하루에 과자나 두어 봉지 파는 곳인데요

물건 사러 온 손님이 가격표 보고 알아서 돈 주고 가고

외상값 같은 것도 알아서 머릿속에 적어 넣어야 하는 곳인데요

전에는 하루에 막걸리 두 말도 팔고 담배도 보루째 팔았대요

글 모르는 월평 할머니와 글 모르는 손님이 만나면

물건값이 눈대중으로 매겨지는 집이기도 하지요

물건값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쓸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는

월평 할머니의 경제학이 통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가격표 같은 것은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한 것이고요

낱돈 없는 날에는 구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고

천이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어서

그냥 천원집이라고 불리는 집인데요

한 십 년 묵은 외상값이 부조금이 되기도 하는

천원집이 있기는 있었는데요


-이대흠, <천원집>


언제부터 모든 물건에 가격표가 붙게 되었을까요? 누군가는 물건 가격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며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실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동네 꼬마들도 알지요. 그걸 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격표 같은 것”은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한 곳이 있다네요. 천원 한 장이면 그저 다 괜찮은 곳. 거스름돈 없으면 없는 대로 가져 가고, 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가져가고, “한 십 년 묵은 외상값은 부조금이 되기도” 한다니,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구멍가게 아닌가요? 


이런 교회 있다면 꼭 가보고 싶지 않을까요? 신년특별새벽예배에서 <팔복> 설교를 하며, 올해 우리 교회가 천원집 같은 공동체 되면 좋겠다 싶어졌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누구나 모여 북적북적하다가 마음 넉넉해져서 돌아가는 교회, 이런 시절에도 봄 소식 같은 그런 교회. 함께 꿈꿔 볼 만 하지 않을까요? 모두 복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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