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푸른 곰팡이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이문재, <푸른 곰팡이 – 산책시 1>


편지지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몇 장을 버리고서야 겨우 완성하여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을 때, 그 손의 떨림을 아직 기억하고 있나요? 답장을 기다리며 몇 번이고 우체통을 열어볼 때의 그 두근거림은요? 수많은 고지서 속에 기다리던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지요.


클릭 한 번에 편지가 전달되는 시대에 살며 우리는 ‘발효의 시간’을 잃고 말았습니다. 기다림과 떨림으로 푹 숙성이 되어 마침내 피어나는 사랑을 잃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우체통은 속도 지배의 세상을 향해 빨간 경고를 날립니다. 그렇게 달리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고.


코로나가 다시 기승입니다. 빨리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세상에 다시 제동이 걸렸습니다. 기왕 멈춰 선 거, ‘발효의 시간’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기도와 응답 사이, 푸른 강이 흐르도록 말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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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