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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호모 루아/ 나희덕 



호모 루아* / 나희덕 


   호모 파베르이기 전에

   호모 루아, 입김을 가진 인간 


   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

   부드러운 입김 속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들어 있는지

   거대한 석벽도 버텨낼 수 없었지요 


   오래전 모산동굴에서 밤을 지낸 적이 있어요

   우리는 허공에 하얀 입김을 피워올리며

   밤새 노래를 불렀지요

   노래의 투명성을 믿던 시절이었어요

   노래의 온기가

   곰팡이를 피우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몸이 투명한 동굴옆새우들이

   우리가 흘린 쌀뜨물에 죽었을지 모르겠어요 


   입김을 가진 자로서 입김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허공에 대한 예의 같은 것 


   얼어붙은 손을 녹일 수도

   유리창의 성에를 흘러내리게 할 수도

   후욱, 촛불을 끌 수도 있지만

   목숨 하나 끄는 것도 입김으로 가능해요

   참을 수 없는 악취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도 있지요 


   분노가 고인 침으로

   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신의 입김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힘이 세군요

   그러니 날숨을 조심하세요

   입김이 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니까요 


   * Homo Ruah. 'Ruah'는 히브리말로 '숨결', '입김'을 뜻함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2:7).”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말이 있을까요? 인간을 살아있게 하는 건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그분의 ‘루아'(루아흐, 숨결 혹은 입김)입니다. 그 숨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 숨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손 ‘하~' 불어 녹이기도 하고, 넘어져 우는 아이 이마에 ‘호~’ 불어 울음 그치게도 하고, 물에 빠진 사람 코에 ‘후~’ 불어 살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살림의 입김입니다. 그런데 “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니. 입김 속에 담긴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동굴의 석벽도 녹이고, 노래의 온기가 곰팡이를 만들고, 심지어 “분노가 고인 침으로 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죽임의 입김입니다. 


입냄새가 너무 심한 사람 곁에 있어 보니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더군요. 그런데 더 견딜 수 없는 건 사람 입에서 나오는 악취 가득한 말입니다. “몇 마디 말로 영혼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 시가 들어있는 시집 제목이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내 입에서 날숨과 함께 나간 말들이 돌아올 때,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성경공부나 설교를 한 날이면 집에서 말이 없어집니다. 내 안의 숨을 너무 많이 쏟아 놓아 지친 이유도 있지만, 내 입에서 나간 그 많은 말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 두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은퇴하면 말을 덜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시인의 조언을 따라 살기로 마음 먹으며 기도합니다. “입김을 가진 자로서 입김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허공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을 지키며 살게 해 주소서.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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