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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열쇠 /도종환



세상의 문이 나를 향해 다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열어보면 닫혀 있는 문이 참 많다

방문과 대문만 그런 게 아니다

자주 만나면서도 외면하며 지나가는 얼굴들

소리 없이 내 이름을 밀어내는 이데올로그들

편견으로 가득한 완고한 집들이 그러하다

등뒤에다 야유와 멸시의 언어를

소금처럼 뿌리는 이도 있다

그들의 문을 열 만능 열쇠가 내게는 없다

이 세상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저 평범한 몇 개의 열쇠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드리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사는 동안 내내 열리지 않던 문이

나를 향해 열리는 날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문이 천천히 열리는

그 작은 삐걱임과 빛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소리

희망의 소리도 그와 같으리니


  • 도종환, <열쇠>


중학교 때인가, 실톱을 잘라서 만능 키를 만들었다며 자랑하던 친구들이 있었죠. 사물함 정도는 거뜬히 열고, 가끔 자전거 자물쇠도 열어서 못된 짓 하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만능'은 아니더군요. 참 다행이지요. 세상엔 문이 많고 그 문들을 다 열 수 있는 만능 키 같은 건 없다는 걸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배웠으니까요. 


마음 문보다 열기 힘든 문이 또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편견으로 가득한 완고한 집들"의 문은 어떤 열쇠를 써도 도무지 열고 들어갈 수 없지요. 돌아서는 등뒤에 “야유와 멸시의 언어를 소금처럼 뿌리는" 집주인도 있는 걸요. 시인은 “그러나 두드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요. 마치 벽같았던 그 문이 끼이익, 하고 열릴 그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요. 


목회하며 배웠지요. 사람들의 마음 문을 다 열게 하는 만능 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래서 설교는, 목회는,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막막한 문 앞에 서서 노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언젠가 “그 작은 삐걱임"이 들리고 “빛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소리"가 들리는 그날까지. 돌아서서 가버리지 않으시고 내 집 문을 계속 두드리셨던 예수님처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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