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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10/29-11/4)



이번 주 묵상 본문 - 왕상 22:15-53; 오바댜 1:1-21; 욥기 1:1-22


왕상 22:15-53


미가야가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말하자(22:15), 아합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이미 아는 듯이 진실을 말하라고 재촉한다(16). 이에 미가야는 왕은 있으나 ‘목자 없는 양같은’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17), 천상회의에서 거짓 영이 아합의 선지자들을 꾀어 여호와께서 그의 죽음을 이룰 것임을 증거한다(18-23). 이에 시드기야는 참된 예언의 진실성에 다시 도전하고 미가야는 투옥된다(24-28).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변장하면서까지 전쟁에 나선 아합은 우연같이 준비된 화살에 맞아 부상으로 죽고(29-40), 병거에 묻은 피를 창기들이 목욕한 물로 씻을 때에 개들이 핧는다(38, 21:19). 이는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었으나 아람왕의 책략에도(31) 죽음을 면하고, 군사들도 살육당하지 않고 본향으로 돌아오는(36, 17b) 사실과 함께, 아합의 모욕적인 죽음이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음을 알려준다(38b, 22b, 20:42, 21:19; 참고 신 18:21-22).


여호사밧은 산당은 폐하지 않았지만,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행하였고 북왕국과 화평하며, 제의 매춘을 제거했다고 칭송된다(41-46). 48-50의 금을 구하는 이야기는 솔로몬의 영화를 재건하려는 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유다왕조는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와는 반대로 아하시야는 바알을 예배하며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의 길을 반복하면서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간단한 기록으로 열왕기상은 마무리된다(51-53).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22:43a) 시카고기쁨의교회 식구들이 되기를 두 손 모은다.


오바댜 1:1-21


오바댜서는 소선지서 열두 권 중 네 번째 책이며, 소선지서 중에서 열방(주로 에돔 족속)을 향한 직접적인 예언을 다룬다. 따라서 오바댜가 다루는 핵심 주제는 열방을 향한 여호와의 날 심판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심판자임을 보여준다.


옵1-9절은 에돔 족속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그 심판의 첫째 이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에돔의 교만이었다(3-4).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 에돔을 하나님은 낮추실 것이다. 지혜 있는 자들을 멸하며 용사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8-9).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돔이 심판당하는 둘째 이유는 10-16절에 제시된다. 그것은 형제 나라인 유다 왕국에 저지른 포학의 죄 때문이었다(10). 그들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릴 때 관망하기만 했고, 예루살렘 재산을 나눌 때는 수탈에 동참했다(11). 하나님은 형제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조장한 죄를 반드시 물으신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보며 우리는 관망하거나 이익을 따지고 있지는 않은가.


욥기 1:1-22


이어서 욥기 묵상이 시작된다. 욥기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1절은 욥이 우스 땅에 살고 있었고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고 소개한다. 하나님은 욥을 칭찬하시지만 사탄은 욥의 신앙은 “까닭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며, 그의 소유물을 친다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0-11). 하나님은 그의 몸에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하신다.


결국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만다. 가축과 종들 그리고 심지어 10명의 자녀들까지 한 날 죽임을 당한다. 이에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린다(20).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표현이자 가장 깊은 애도의 몸짓이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심을 인정하며 찬송한다(21-22). 욥이 까닭 없이도 주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다.


감히 이해하기도 따르기도 어려운 믿음으로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무슨 까닭으로 주님을 믿는가.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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