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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11/26-12/2)


이번 주 묵상본문 - 욥기 21-27장


욥 21장은 ‘악인의 최후'에 대한 소발의 강론을 들은 욥의 대답이다. 욥은 현실에서 목격되는 악인의 부귀와 영화로운 삶을 예로 들어 언급하며 소발과 친구들의 ‘인과응보' 사상에 반박한다. 욥은 왜 현실에서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고 따져 묻는다(7). 게다가 그들은 전능자를 인정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다(15). 그럼에도 악인들은 종종 재난을 피해가기까지 한다. 심지어 악인의 무덤을 사람들이 지켜주는 걸 보라고 욥은 말한다(32). 한 마디로, 친구들의 위로는 헛되고 그들의 말은 거짓이라는 반박이다.


22장에서 다시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욥을 향한 공격이 시작된다. 세 친구와 욥과의 대화 사이클 중 세 번째 사이클의 시작이다. 엘리바스의 언어가 점점 거칠고 노골적이 된다. 욥을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한 악인처럼 묘사한다(6-7). 욥의 고난은 분명 죄의 결과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욥을 악인으로 몰아간다. 엘리바스가 볼 때 욥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만했노라”라고 말하고 죄를 자백하는 것뿐이다(29).


엘리바스의 말은 대체로 옳지만 욥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욥은 수긍하고 자백할 수 없다. 23장에서 욥은 엘리바스에게 반박하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 달라고 토로한다. 문제는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8).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 단련하신다면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걸 확신한다(10). 욥은 쉽게 순응하는 인물이 아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의 대답을 듣기 원한다.


24장에서 욥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전능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악인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데(2), 하나님은 왜 그들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는가(12). 그러나 18절 이하는 악인의 결국이 멸망이라는 사실을 선언한다.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으나 천대를 받을” 것이다(24). 지금의 현실은 부조리하고 불의하나 정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바로 잡으실 것이다.


25장은 빌닷의 짧은 발언이다. 빌닷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에게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몰아간다(4, 6). 겸손한 듯 보이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누군가를 향한 멸시의 표현으로 들린다. 빌닷의 발언으로 세 친구들의 발언은 막을 내린다.


26장에 이르러 욥은 빌닷에게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하며 그의 말이 아무런 도움이 못 되고 오히려 괴롭게 할 뿐임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2). 욥은 이제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반박하기보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와 그분의 능력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앞에 인간의 지식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다(14).


27장에 나타난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분이라고 말하면서도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한다(2). 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욥은 자신이 결코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하나님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고 오히려 그분을 찾고 또 찾는 욥을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고 묵상해 보자. 우리가 붙잡으려 했던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고 위로하기만 해 주는 하나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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