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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12/10-16)



이번 주 묵상본문 - 욥기 33:1 - 38:38


33장에서 엘리후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그는 욥을 향해 자신의 진실한 말을 경청하라고 종용한다. 욥의 불의를 증명하기 위해 내세우는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의 진심이다. 그는 ‘마음의 정직함’으로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3절). 그러나 진심이 곧 진실은 아니다. 그가 욥의 진심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엘리후는 욥에게 공감하기보다 가르친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인간들이 관심이 없어 듣지 못한다며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가르치고(14), 악한 행실을 버리도록 도우시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 가르치고 (17절), 나아가 고난 중에 건지시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단계별로 가르쳐 준다. 특히, 하나님께서 천사 중에 중보자를 보내시며 대속물을 통해 그를 구덩이에서 건지신다고 말한다(23). 그의 가르침은 많은 면에서 맞지만, 욥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기에 공허하다. 그는 하나님을 대변하려고 하지만, 어느덧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다. 


34장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이 전능자로서 세상을 정의로 다스리심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적용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할수록 욥은 점점 악인이 되어 간다.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자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4) 하면서, 욥을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 패"라고 비방하기에 이른다(8). 결국 엘리후도 다른 세 친구들의 권선징악 논리로 욥을 정죄한다. 엘리후는 욥이 “무식하게” 말하고 지혜롭지 못하다며 모욕하고(35), 계속 시험 받기를 원한다는 악담까지 한다(36). 하나님의 정의의 칼을 들어 욥을 찌르는 엘리후야말로 가장 정의롭지 못한 인물이다. 


35장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을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초월적인 분으로 묘사한다(6-7). 하나님께서 인간을 초월해 계신 분이라는 점은 옳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무관심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아무 상관하지 않는 무정의 신의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하나님이 저 멀리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36장에 이르러 고난의 유익에 대해 욥에게 가르친다. 욥의 다른 세 친구가 고난의 원인에 집중했다면, 엘리후는 고난의 유익을 가르친다. 고난은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는 유익이 있다(9). 고난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닐지라도 고난을 통해 얻는 유익이 분명 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이웃을 보며 우리가 할 일이 과연 고난의 유익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할까?


마지막으로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의 결과임을 다시 강조하고(17), 37장에 이르러 욥에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며(14),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떠올릴 때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잠시 후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대신하는 듯 한 말들이다.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23)라고 말하는 엘리후는 하나님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듯 하다. 


38장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등장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하나님은 욥이 계속하여 던져온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천지창조의 순간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고 물으신다. 이후 계속하여 창조의 과정과 신비를 말하시며 “네가 이것을 아느냐" 물으신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지 않는 영역이 없다는 것과 인간의 유한함과 한계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욥을 책망하신다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욥을 더 큰 세계로 인도하고 계신다. 대림절 기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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