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본문 - 눅 14:1-16:31
누가는 14장에 ‘식탁’에서 나눈 네 가지 이야기를 모아 둔다. 첫자리에 또 하나의 안식일 논쟁이 앉아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높은 주일성수의 관심을 가늠하면 그 시대에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기에 충분한 이슈였을 게다. 예수님은 이어진 두 이야기로 각각 손님의 위치에서는 겸손을, 주인의 위치에서는 보답없는 베품을 주문하신다. 네번 째 이야기에서 초대받은 잔치를 정당한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의 빈 자리를, 세번째 이야기의 초대 대상들에 나그네를 더해 채운다. 우리가 꿈꾸며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들은 어떤 모습에 더 가까운가?
25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와 함께 갈 때, 사실상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교의 길로 제자들을 초대하신다. 가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제자가 되어가는 것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비용을 들여 소금 맛을 내는 제자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묵상해 보자.
15장에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 기쁨을 비유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안전한 아흔 아홉 마리로 인한 손익 계산보다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애타게 찾은 목자가 있다. 수개월을 아껴 모았다가 잃어버린 은전 10개를 다시 찾은 여인이 있다. 그 기쁨은 너무도 커서 주변 모든 사람들은 물론 하늘에 있는 자들도 잔치에 초대된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비유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을 찾은 기쁨이 넘친다.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에게 관대함으로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 잃어버렸던 우리를 찾으셨던 성부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우리는 잃어버린 그 ‘어떤 사람’도 환대하며 참으로 ‘기쁨’을 누리는 ‘주막’인가? (눅 10:34)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보다 재물과 가난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16장은 제자들에게 ‘청지기가 있는데’로 이야기를 시작하시며, 재물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긍휼-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지혜를 배우라고 하신다. 알게 모르게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기는 인생의 현실을 주님께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의인은 재물로 번영한다고 믿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는다. 자신들의 합리화에 이용한 율법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엄연히 간직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가난한 나사로의 이름을 알고도 고의로 돌보지 않았던 부자는 음부의 고통에서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귀에 들릴 때 깨닫고 순종함이 일상이 되는 한 주간을 맞이하자.
(글. 김종필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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