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본문 - 룻기 1-4장
흉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떠났던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 길을 떠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어둠의 시기,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헷세드 사랑이 이 가정을 통해 펼쳐진다. 룻기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멸에 이른 이야기가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이다.
모압으로 돌아간 오르바와 달리 룻은 끝까지 나오미의 하나님과 그 백성이 되기를 선택한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로 부르라고 하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한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괴롭히는 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이다. 나오미는 ‘비어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룻과 함께 돌아왔다’고 증언한다. 추수의 시작과 함께 그녀의 인생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2장에서, 우연인 듯 보이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룻과 보아스가 만난다. 룻의 인애(헷세드)로 나오미의 텅 빈 삶이 채워지고, 보아스의 헷세드로 룻이 보호를 받고 위로를 얻는다. 보아스의 인애는 경계를 넘어 이방 여인에게까지 흘러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보호’와 ‘온전한 상’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 여자에게까지 임하기를 축복하고, 보아스 자신이 그 기도대로 행한다. 나의 사랑이 넘어가야 할 경계선은 어느 지점인가?
3장에서는, 며느리를 복되게 하기 위한 시어머니의 말에 순종하여 룻이 보아스의 발치 아래 눕는 장면이 펼쳐진다. 신랑이 되어 달라는 청혼인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는 ‘여호와의 날개’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책임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아니었다. 헷세드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랑이다.
룻이 할 일을 마치고 이제 보아스가 일하기 시작한다. 기업 무를 더 가까운 친척은 손해볼까 염려하여 거절하는데, 이것을 통해 보아스가 희생을 감수하며 인애 베풀고 있음이 드러난다. 기업을 자신 이름으로 세우려고 했던 그는 ‘아무개’로 사라지지만, 보아스의 이름은 영원히 빛난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며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고, 나오미는 오벳을 안으며 인생의 회복을 경험한다. 다윗으로 이어진 베레스의 족보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을 드러낸다.
룻기는 텅 빈 채로 돌아왔다고 한탄하던 나오미의 품에 아들이 안기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로 시작된 이야기가 “다윗을 낳았더라”로 끝난다. 복음은 텅빈 인생을 충만하게 하고, 쓰디쓴(마라) 인생에 기쁨(나오미)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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