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 묵상 본문 -
민수기 32:20-36:13
요단 동편에 남겠다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구에 모세는 분노하지만, 반드시 전쟁에 참여하며 선두에 설 것이고 모든 전쟁이 끝난 후에 길르앗으로 돌아오겠다는 그들의 제안을 받고 허락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대가 말한 제안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일을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인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맡긴다. 이로 인해 그들이 약속의 땅이라고 믿었던 지역만 아니라, 요단 동편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으로 분배받는다.
이제 땅 분배가 마무리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난 40여년간의 여정을 기록하게 하시는 장면이 33장에서 펼쳐진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서 보낸 40년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반란의 땅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을 경험한 현장이었다. 언급되는 지명마다 그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은총이 새겨져 있다. 특히 가데스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40년 방황이 시작되었고, 결국 출애굽 1세대는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제2의 가데스인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셨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신다. 광야로 돌아가겠는가,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가겠는가?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엄중하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주민을 완전히 몰아내고, 우상을 혁파하고 산당을 허물어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이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것이다. 혹시 동거하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과 습관은 없는가? 몰아내야 할 것을 계속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34장에 이르면 약속의 땅의 경계와 더불어 분배받은 땅 책임자들의 선정에 관한 명령을 다룬다. 가나안 땅의 영역은 가장 위쪽의 하맛 어귀에서 가장 아래 애굽 하수까지를 포괄한다. 동서로는 요단강부터 지중해까지이다. 이렇게 광대한 경계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이 경계까지 다 점령한 때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밖에 없다.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땅의 정복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훗날 그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까지 이르게 된다.
35장은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48개의 성읍과 도피성 제도를 다룬다. 레위인들은 땅을 기업을 받지 못하는 대신, 48개의 성읍을 주고 그곳에 거주하게 하신다. 또한 그 중에 다시 여섯 개의 성이 도피성을 지정되는데,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정당한 절차없이 보복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특별 보호구역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아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고 있는가?
민수기는 흥미롭게도 슬로브핫 딸들의 상속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끝이 난다. 27장에서 이들의 토지 상속 문제가 대두되었고 해결책이 마련되었었는데, 36장에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즉 이 딸들이 그 상속받은 토지를 가지고 다른 지파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면 그 땅은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였다. 결국 슬로브핫의 딸들은 같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하여 지파의 기업을 지키도록 명령하고, 그 딸들은 순종한다. 이제 땅 분배를 위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남은 일은 믿음으로 들어가 순종하는 것 뿐이다. 40년 광야를 통해 그들이 배운 것은 순종 또 순종이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롬 1:1-17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주후 57년경 고린도에서 로마시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꿈꾸어 오던 스페인 선교 길에 방문할 의도를 전하면서, 유대인과의 갈등을 염두에 두고 복음에 근거한 성도의 삶을 교훈하고자 한다 (15:14-29). 첫 부분에서 바울은 구약에서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복음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성되었다고 전제한다(1-4). 자신은 이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직분을 얻었는데(사 49:1, 6), 편지 수신자들 또한 동일한 직분으로 부름받은 이들임을 밝힌다(5-7). 복음으로 인해 모든 이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사는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열매가 있음을 감사하면서, 그와의 교제를 통해 그들이 더욱 견고해지기를 소망한다(8-15). 그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여 살게 하시는(합 2:4)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의다(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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