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 나태주, <11월>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노래가 있지요.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 날이 되면 라디오에서 꼭 흘러나오는 노래입니다. 제목은 <잊혀진 계절>. 아마 떨어지는 낙엽과 이별이 가을을 잊혀진 계절로 느끼게 한 듯 합니다.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헤어져야 했던 그 사연이 궁금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어쩐지 공감이 되는 건 그 날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기 때문 아닐까요?


10월 31일이 되면 이 노래가 생각나듯이, 11월이 되면 꼭 생각나는 시가 바로 나태주 시인의 <11월>입니다. 특별한 꾸밈이나 심오한 함축이 보이지 않지만, 11월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니. 지나간 10개월이 아쉽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시점이고, 남은 한두 달 버린 셈치려 하니 아깝습니다. 망쳐버린 듯한 2020년 얼른 보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만, 새해라고 달라질 것 없으니 중요한 건 새 시간이 아니라 새 마음이겠지요.


늦가을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는 장미는 못 다 이룬 사랑이려나요? 그래서 낮이 조금 더 짧아진 이 계절에 더 그대를 사랑하기로 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더 사랑해야겠다는 깨달음이자 의지이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무엇으로 채울까요?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예수님에겐 그 때가 11월이었나 봅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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