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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우화의 강>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수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하긴커녕 그저 몇 주만에 만난 것 같이 편한 친구. 둘 사이에 어떤 물길이 나 있길래 그런 걸까요.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연주하면 친구 종자기는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지요? 마종기 시인도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는 ‘지음'(知音)이 못내 그리웠나 봅니다. 


지인은 많아도 지음을 만나긴 어렵지요.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한 쪽의 기쁨이 흘러가 친구의 가슴에도 출렁거리는 강물이 어디 한 순간에 만들어질 수 있나요. 처음 둘 사이에 물길이 트고, 그 “짧고 어색"한 물길에 서로 물을 보내주는 그 수많은 일렁거림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만들어지겠지요. 


교회 안에 서로 물길을 튼 교우들이 얼마나 될까요?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만,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이는 애씀없이 그런 강물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을 겁니다. 조금 낯선 얼굴을 보면 “안녕하세요?”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지난 주 못 뵈었는데 별일 없으셨어요?” 안부를 묻고, 아프다는 말 지나치지 않고 죽 한 그릇 만들어 찾아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도 강물이 되어 만나고 있을 겁니다. 흘러가는 물마다 죽은 것들이 살아나더라는 에스겔의 그 환상처럼 말입니다(겔 47:1-12). 


그나저나, 우와, 이게 우화(寓話)가 아니라 우화(偶話)라니!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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