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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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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김소월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김소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재밌어도 크게 웃지 않고 슬퍼도 엉엉 울지 않는 어른들이 요상하여 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그래서 속 터놓고 말조차 못 건네는 그들의 인간 관계를 보며 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는다 말하면서도 쌓아 놓은 거 잃을까 두려워 은근슬쩍 주저앉는 그 모습이 처량하여 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고 오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정겨웠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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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2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세종의 언어, 정음 / 홍순관
*출처: 홍순관 페이스북 2026.09.11 포스팅 세종은 타고난 재능과 목숨을 다하여 이 나라에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계급의 문제와 소통의 문제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계급의 문제라고 한 것은, 언어가 갖는 권력을 말한다. 문자를 모르면 문자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 사이는 갈수록 멀어진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일은 당시 세종을 빼고는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학문이 깊고 견문이 넓은 지식인일수록 맞섬의 세기는 강했고 집요했다. 게다가 문자를 만드는 어려움은 단순히 반대하는 정치인들, 지식인들을 상대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한자로만 세상을 살았던 모든 구조와의 싸움이었다. 세종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설득해내는 일이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세종 스스로와의 싸움이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화석처럼 굳어진 관념과 무심한 세월을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죽하면 임금이 문자를 만들고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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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2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풀잎 2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 <풀잎 2>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시가 있지요. 이 시가 그래요.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특색을 맛깔나게 살려낸 시이지요. 파열음인 ‘ㅍ’이 반복되고 있지요? 풀잎, 퍽도, 푸른, 휘파람… 낭송하는 동안 어디선가 푸른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된다니, ‘흙 흙 흙’ 하고 부르면 눈물 냄새가 차오른다던 문정희 시인이 떠오르네요. 옛 선인들은 책을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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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주름 / 박노해
많은 강을 건너고 많은 산을 넘다 보니 알지요 이유 없는 산등성이 하나 연유 없는 골짜기 하나 없지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고 그냥 불어가는 바람은 없지요 얼굴은 얼의 골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주름 편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주름진다고 낡아지지 않지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발자국에 부디 짓눌려 구겨지지 말기를 얼의 골짜기로 무늬 지어가기를 골짜기 물 맑고 깊으니 산 또한 푸르고 힘차니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기를 박노해, <주름>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사연 덩어리들이에요. 그간 만난 산등성이와 골짜기들이 다 인생의 사연이 되었겠지요. 그 눈빛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그 웃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에요. 아, 주름과 주름 사이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려면 얼마나 깊은 눈이 필요할까요.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나희덕, <주름들> 중).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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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전라도 사투리가 겁나 찰지네요. “어머나, 단풍 들겠네”라고 썼다면 그 맛이 안 나겠지요. 장독대에 내려앉은 붉은 감잎 하나를 보며 누이가 놀라 탄성을 지릅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이제 곧 추석을 기다리며 한껏 들뜬 마음이, 잦은 바람에 농사 걱정으로 조금 흔들리나 봅니다. 그런 누이의 속마음을 향해 말을 건네는 화자의 마음이 퍽 정겹습니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아 질주하는 삶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경탄의 능력’이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는다. 모든 게 무덤덤해지고 시들해진다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 그것은 늙음의 징표이거나 타락의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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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내 인생의 모든 계절/ 박노해
*출처: https://www.nanum.com/site/850570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봄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 내 안쪽으로도 문을 여는 여름 가을은 갈 게 많아서 가을 씨앗 하나만을 품고 다 보내주는 가을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 벌거벗은 힘으로 뿌리를 키우는 겨울 그러니 내 인생의 봄 가을이 모두 다 희망 길어진 여름 겨울도 모두 다 감사 박노해, <내 인생의 모든 계절> 떠나기 싫다고 고집 부리던 여름 더위가 가고 가을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네요. 시카고의 봄 가을은 유독 짧아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저 파란 하늘과 햇살을 어디 좀 숨겨 놓았다가 겨울에 풀어 놓고 싶다니까요.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봄은 알레르기 때문에 싫고, 여름은 땀이 나서 싫고, 가을은 쓸쓸해서 싫고, 겨울은 가슴 시려서 싫다고들 불평인데, 역시 시인의 마음은 다르네요. 봄은 볼 게 많아서 봄이래요. 지난 봄, 보이는 것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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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시치미 떼기/최승호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오더니 철쭉꽃을 뚝, 뚝, 꺾어간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불행한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누는 걸 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광고들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모순덩어리 우주를 이루어 놓고 수줍음으로 숨어 있는 이가 있으니 그 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최승호, <시치미 떼기> 찾던 책이 옆동네 도서관에 있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습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카드라도 가져가야 하나 싶었지만, 집에 가서 들고 가자니 좀 멀다 싶어 그냥 갔습니다. 물론, 요즘은 지역 도서관끼리 협업을 하기에 신분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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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세월의 강물 / 장 루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들지 마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루슬로, <세월의 강물> 가족끼리 식사를 할 때면, 아내가 저를 보며 손을 흔들거나 아이들이 킥킥대고 웃을 때가 많습니다. 밥 먹으면서도 창문 밖을 쳐다보며 딴 생각에 잠기는 제 습관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는 그 식탁에 집중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건만, 오랜 버릇이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가끔은 자면서도 생각을 하고, 꿈 속에서도 설교 준비를 합니다. 쉬는 것이 낯섭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어색합니다. 휴가 첫 며칠 간은 죄책감 비슷한 감정마저 듭니다. ‘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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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처음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던 날, 이민 가방 4개를 턱 하니 카트에 실어 도와주던 이를 보며 ‘미국인들이 참 친절하구나’ 안심했었지요. 이내 팁을 달라고 하는 말에 홀린 듯 생돈 5불을 주기 전까지는요. 그렇게 정신없이 공항을 나와 학교로 향하는데… 아,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거예요. 달이, 한국에서 보던 달과 똑같이 생긴 달이. 저 달이 위로가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지요.” 아버지 장례 치르고 돌아오던 날에는 그 달이 통곡이 될 줄도 몰랐고, 홀로 되신 어머니 생각하다 사무친 그리움이 될 줄도 몰랐고요. 밤마다 돋는 날이 그리움이고 설움인 줄, 시 속 화자는 “예전엔 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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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고구마 / 김은지
봄에는 심장약 복용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수의사는 말했다 열 살 넘은 개가 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들숨 날숨에 맞춰 움직이는 배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나를 확인하는 개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 말을 걸며 빈틈없이 이불을 꼭꼭 덮어 줄 수 있는 겨울 고마움 김은지, <고구마>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가 같다는 건 알겠는데(한참 걸렸지만), 그 얘기가 왜 거기서 나오는지는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아, 겨울이니까 마침 개 옆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었나? 아니면 개가 고구마를 좋아했나? 아하, 개 이름이 고구마였을지도! 실제로 고구마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였다네요. 시인이 이 시를 낭독하려고 제목을 먼저 읽으면 금새 고개를 들고 쳐다 볼 정도로. 고마움은 이토록 새삼스레 다가오는 법이지요. 들숨 날숨 박자 맞춰 배를 움직이며 잠든 개를 쓰다듬다가 문득 고구마와 고마워가 두 글자나 같다는 걸 발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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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함민복, <흔들린다>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더니, 오십 중반으로 접어드는데도 여전히 흔들리네요. 어제도 빼어난 글쟁이에 샘이 나서 이러저리 흔들거렸다니까요. 반백 년을 살았는데 제 마음 하나 다잡지 못하다니, 이쯤 되면 지천명(知天命)은 물 건너 갔다고 봐야겠지요. 풀 죽어 있는 내게 시인은 흔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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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그늘 선물 / 이정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마라. 왼손잡이가 이 밭 저 밭 코뚜레 잡아채도 소 콧구멍은 오른쪽으로 삐뚤어지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이 장바닥 저 장바닥 고삐 몰아쳐도 화등장만 한 눈알이 왼편으로 뒤집히지 않는다. 워낭 소리도 코쭝배기에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도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법이여. 낭창낭창 코뚜레만 파이다 동강나는 거여. 땀 찬 소 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 따가운 햇살 쪽에 서는 것만은 잊지 마라. 소 등짝에 니 그림자를 척하니 얹혀놓으면 하느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장하겄냐? 이정록, <그늘 선물> (어머니학교21 중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로 선 채 눈을 감아 보세요(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10초 이상 서 있을 수 없다면 이미 신체 나이가 60-70대랍니다. 30초 이상은 되어야 한다더군요. 얼마나 신빙성 있는 연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가 들수록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어디 몸만 그럴까요? 마음도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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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점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의 이 시집은 제목 그대로 ‘질문의 책’입니다. 총 74편의 시가 실렸는데 전부 질문입니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하긴 어디 네루다 뿐인가요? 우리도 어린 시절 질문을 달고 살았었잖아요. “왜요?”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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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부패의 힘/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나희덕, <부패의 힘> 언젠가 한국 마트에서 빵 하나를 사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으며 무심코 유통기한을 보니 아직 2년이나 남았더군요. 방부제를 얼마나 넣었다는 말일까요? 시간이 흐르면 썩어 부패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하나님 창조의 질서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시인은 녹슬 수 있음과 썩을 수 있음에 안심합니다. 반면, 녹슬지 않고 썩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합니다. 속은 썩어가는데 겉만 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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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분홍 나막신 /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깍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송찬호, <분홍 나막신> 신발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발에 맞으면 신는 거고, 구멍 나기 전까지는 신는 거라 여겼지요. 어릴 적 그 비쌌던 프로스펙스 대신 스펙스, 나이키 대신 나이스를 신고 다녀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며칠 동안 괜찮은 새 신발을 찾아 헤맸습니다. 발 편한 신발, 무릎과 허리에 좋은 신발 고르느라 발품을 좀 팔았습니다. 내게 딱 맞는 신발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이 시를 읽으며 뭐 이런 사랑이 있냐고 발끈했습니다. 내 발에 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발을 신에 맞추려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는답니다. 피가 배어 나와 새 신에 물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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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사랑의 전당 / 김승희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 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포대 속 그런 데에 살아도 사랑한다는 것은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 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 시퍼런 수박을 막 쪼갰을 때 능소화 빛 색채로 흘러넘치는 여름의 내면, 가슴을 활짝 연 여름 수박에서는 절벽의 환상과 시원한 물 냄새가 퍼지고 하얀 서리의 시린 기운과 붉은 낙원의 색채가 열리는데 분명 저 아래 보이는 것은 절벽이다 절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절벽까지 왔다 절벽에 닿았다 절벽인데 절벽인데도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다 절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 낭떠러지 사랑의 전당 그것은 구도도 아니고 연애도 아니고 사랑은 꼭 그만큼 썩은 고구마, 가슴을 절개한 여름 수박, 그런 으리으리한 사랑의 낭떠러지 전당이면 된다 김승희, <사랑의 전당> 가난해서 고구마, 감자, 수제비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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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2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동네 사람 먼 데 사람 / 이안
이미지 출처: https://www.fmnews.kr/?mid=view&no=18074 뒷산 두릅밭 지나가면서 어린순 몇 개는 살려 두었다 내년 봄이 가까운 동네 사람들 뒷산 두릅밭 지나가면서 우듬지까지 싹둑싹둑 잘라서 갔다 내년 봄이 아득한 먼 데 사람들 이안, <동네 사람 먼 데 사람> 군 시절, 강원도 철원의 산과 들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풍성했습니다. 지뢰 무서운 줄도 모르고 더덕 캐러 깊은 산속을 헤매었고, 겨울 대비 싸리나무 만들 즈음이면 다래 따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봄이 되면 철원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꽃도 맛나게 먹었고, 고향에서 즐겨 먹던 두릅을 보고 반가워 냉큼 달려가 따곤 했었지요. 도시에서 살다 온 이들은 두릅을 한 나무에서 너무 많이 따면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욕심을 내더군요. 아, 잣도 올해 풍성히 거두면 다음 해는 잘 안 열리는 ‘해거리’를 하는데, “어차피 내년에 난 여기 없다”며 봉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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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아침 먹을 때 ‘점심 뭐 먹을까’를 생각하고, 점심 먹으면서는 ‘저녁에 뭐 먹지’ 고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그만큼 맛있게 먹을 수도 없겠고요.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사람과 대화하면서도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자꾸 다른 곳에 시선이 가 있다면 어떨까요? 나를 건성으로 대하는 이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렇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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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 <참회록> 윤동주는 1942년 1월 29일 창씨개명계를 제출합니다. ‘히라누마 도주’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성씨를 바꾼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시 <참회록>은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 닷새 전에 쓴 작품입니다.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기 전 얼마나 괴로워 했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 입학과 진학 거부는 물론, 행정기관에서 다루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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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1분 분량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쌀/ 정일근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 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같이 귀중히 여겨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정일근, <쌀> 쌀을 살로 발음하는 분들, 그동안 웃은 저를 용서해주시어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 줄 모르고 살았네요. 쌀이 녹아 살이 되고, 살을 녹여 쌀이 됨을 몰랐어요. 내가 먹은 쌀이 내 몸의 살이 되는 거였네요. 서울은 그것도 모르면서 쌀쌀맞게 웃어요. 쌀 한 톨의 무게가 살점의 무게임을 까마득히 몰랐어요. 쌀이 살이 되고 살이 쌀이 되는 것, 그게 밥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삶이었네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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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1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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