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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eavenlyseed

시를 잊은 성도에게 - 엄숙한 시간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에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밤에 이유 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웃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

세상에서 정처도 없이 걷고 있는 사람은

내게로 오고 있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그게 왜 나 때문인가요? “이유 없이 울고” 있다면서, 그가 왜 나 때문에 운다는 말인가요. “이유 없이 웃고” 있다면서, 왜 나 때문에 웃느냐고요. “세상 어디선가” 울고 웃고 있는 그 사람의 눈물과 웃음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물었던 시인 존 던이 말했지요. “그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개입되어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대륙의 일부분, 전체의 부분이기에, 누군가의 죽음은 나를 줄어들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어디선가 울고 있는 그의 슬픔에 내가 잇대어 있습니다. 그의 눈물 적어도 몇 방울은 내 책임입니다. 그를 웃게 만드는데 나도 일조할 수 있습니다. 


펜데믹 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으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두 눈으로 보고 경험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게 왜 나 때문인가’ 하며 무심하게 삽니다. 중남미에서 생명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주민들이, 가자 지구에서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아이들이, 서류미비 신분으로 이 땅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7-40).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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