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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달팽이 / 김사인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 김사인, <달팽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년에 딱 한 주만이라도 말 없이 지내보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말의 허망함에 한숨 쉬다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말의 힘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지 않고, 어떤 말도 글도 읽지 않고, 고요 속에 푹 잠겨 있다 나오고 싶습니다. 


너무 많은 말들, 채 익기도 전에 쏟아내야 하는 말들, 나오는 순간 이내 사라지는 말들… 말에 치여 사는구나 싶어졌을 때, 시인과 꼭 닮은 이 시를 만났습니다. 귓속에 사는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그 먼길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귀는 열려 있다던데,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달팽이는 아직도 가고 있나 봅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박준) 설교자로 살면서 누군가의 귀에서 죽어버린 슬픈 말들에게 애도를, 마음속에 들어가 용케 살아 남은 말들에게 응원을 보내곤 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지 않고 그 먼길을 가고 있는 달팽이에게도 응원을 보내야겠습니다. 언젠가 마음 저 깊은 곳에 가 닿을 그날을 위하여.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10:17).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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