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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첫사랑/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 고영민, <첫사랑>


다행입니다. 이런 시에 설레는 가슴이 아직 제게 붙어 있어서요.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길목에서 서성대고, 건네 받은 쪽지 하나에 하루종일 정신나간 사람처럼 실실대고, 전화기가 뜨거워지도록 통화하고, 잠시 기대어 쉬라고 빌려준 어깨에 담이 들어도 좋고…. 뜨거웠던 20대 그 남자가 아직 내 안에 있는 걸까요.


바람이 몹시 불던 봄날 저녁, 시인은 ‘첫사랑’ 그녀의 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얼마나 보고팠으면. 그러다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빈 스티로폼 박스에 눈이 갑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은, 꼭 불안한 자기 마음처럼 보였겠지요. 시인은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 줍니다. 흔들리는 그 마음 꼭 붙잡아 주는 심정으로.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오민석 시인은 이 시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랑은 흔들리고 ‘이리저리' 뒹구는 것들을 ‘가만히' 눌러 중심을 잡아주는 과정이다.” 한 주 내내 흔들리던 마음,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다' 말씀 한 구절이 삶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커다란 돌멩이가 됩니다(막1:11). 빈 스티로폼 박스같은 마음에 넣어줄 ‘사랑'이라는 이름의 묵직한 돌멩이, 하나쯤 품고 살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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