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 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나희덕, <천장호에서>


요즘이야 잘 만들어진 스케이트장이 있지만, 어릴 적 동네에는 얼어붙은 논이나 호수에서 썰매를 타곤 했습니다. 매끈한 스케이트장과 달리 군데군데 울퉁불퉁 튀어나온 곳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지요. 그래도 코가 빨개지도록 얼음을 지치고 놀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 시가 낯설지 않습니다. 봄여름가을을 지나는 내내 호수는 많은 것들을 제 몸으로 비추어 냈을 겁니다. 그 곁의 산도, 그 위를 지나는 새들도, 별빛과 달빛도 비추었겠지요. 그러던 호수가 얼어붙은 이후로 아무 것도 비추지 않습니다. 그 얼음의 단단한 서슬만이 빛날 뿐입니다. 사람들이 던진 많은 돌들을 다 품어내던 호수가 이제 아무 것도 품지 않습니다. 누군가 던진 돌멩이 덕분에 쩡 쩡 메아리 소리만 날아오를 뿐입니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이 한 구절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건만, 얼어붙은 호수에 던진 돌처럼 가슴 속에 쩡 쩡 메아리만 돌아올 뿐입니다. 얼어버린 그 마음은 아무 것도 비추지 않고 아무 것도 품지 않으며 제 단단함의 서슬만 퍼렇게 빛납니다.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 앞에 서는 일은 얼마나 가슴 서늘한 일인지요.


혹 주님의 말씀일까 하여 겁이 납니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봄이 오면, 언 호수도 녹아 얼음에 박힌 돌을 품게 되겠지요.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분 음성 끌어안는 영혼의 봄을 기다립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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