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농담/ 이문재
- heavenlyseed
- 10월 4일
- 1분 분량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농담>
혼자 여행을 갔다가 근사한 풍경을 만나면 어김없이 아내가 떠오르고, 뜻밖에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아들 녀석이 생각나고, 인스타그램에 딱이다 싶은 장면을 만나면 우리 딸 얼굴이 어른거리고, 휴가 때 방문한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 식구들 잘 있나 궁금한 걸 보면… 저 사랑하고 있는 거 맞겠지요?
기껏 고개를 끄덕일 만한 시를 써 놓고 제목이 ‘농담’이라니, 시인 님, 지금 진짜 농담하시나요? 왜 농담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고 시를 읽고 또 읽어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를 쓰신 분도 모른다고 했다니, 나 원 참. 그러다 문득 어차피 농담이라는데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나 싶어집니다. 내 맘대로 읽어도 괜찮다는 말로 받습니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어쩌면 시인은 미안했던 건 아닐까요? 지금 그대가 아픈 건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함이라고 말해 놓고, 지금 곁에 없는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건 사랑이 더 깊어지기 위함이라고 말해 놓고, 당신이 지금 외롭고 아픈 건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기 위함이라는 말 같아서, 서둘러 농담이라고 한 건 아닐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파서 누군가에게 사랑의 종소리를 조금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면, 조금 더 아파도 좋겠다 싶습니다. 농담이냐고요?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3,8).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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