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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미카엘라 / 윤한로



밥하고

똥치고

빨래하던 손으로

기도한다


기도하던 손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전기도 고친다


애오라지

짧고 뭉툭할 뿐인

미카엘라의 손


꼭, 오그라붙은

레슬링 선수 귀 같다


- 윤한로, <미카엘라>


밥하고 똥치고 빨래하는 손과 기도하는 손은 다르지 않습니다. 정성껏 모아 기도하던 바로 그 손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전기도 고칩니다.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은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고 늘 가르치셨지요. 노동하는 손이 곧 기도하는 손이고, 기도하는 손이 곧 노동하는 손입니다.


‘미카엘라'는 가톨릭 교회의 대천사 중 하나인 미카엘이 여성화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아내를 그녀의 세례명으로 부릅니다. 기도는 천사의 (혹은 거룩한) 일이고 노동은 사람의 (혹은 세속의) 일이라 여기는 이들에게 ‘미카엘라의 손'은 육화된 거룩함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에오라지'(오로지) 짧고 뭉툭한, “꼭 오그라붙은 레슬링 선수 귀" 같은 그 손이 천사의 손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이유입니다.


성도는 예배당에서 찬양을 부를 때나 직장에서 일할 때나 동일한 성도입니다. 돈을 셀 때, 타이핑을 할 때, 설거지를 할 때, 악수를 할 때, 서류에 사인을 할 때, 아기를 안을 때, 골프채를 잡을 때, 정원을 가꿀 때, 음식을 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이 손이 기도하는 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덧니: 그나저나 미카엘라가 밥하고 똥치고 빨래하고 전기까지 고치는 동안 시만 쓰고 있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무슨 기도를 드렸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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