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보자기의 비유 / 김선우
- heavenlyseed
- 1월 10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월 10일

처음엔 보자기 한 장이 온전히 내 것으로 왔겠지
자고 먹고 놀고 꿈꾸었지 그러면 되었지
학교에 들어가면서 보자기는 조각나기 시작했지
8등분 16등분 24등분 정신없이 갈라지기 시작했지
어느덧 중년--
갈가리 조각난 보자기를 기우며 사네
바늘 끝에 자주 찔리며
지금이 없는 과거의 시간을 기우네
미래를 덮지 못하는 처량한 조각보를 기우네
한번 기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네
그러니 청년이여 우리여
가장 안쪽 심장에 지닌 보자기 하나는
손수건만하더라도 통째로 가질 것
단풍잎만하더라도 온전히 통째일 것
온전한 단풍잎 한 장은 광야를 덮을 수 있네
김선우, <보자기의 비유>
마흔 생일이 되던 날, 허를 찔린 듯 예상치 못한 우울이 찾아왔었지요. 억울했습니다. 뭐가 억울한지, 왜 억울한지도 모른채, 마냥 억울해 했습니다. 꽤 오래 그 아픈 감정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이 시를 읽고 나니 알겠네요. 온전히 내 것이었던 보자기 한 장이 어느새 8등분 16등분 24등분 정신없이 갈라지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건 내 꿈이었을까요? 하얗던 내 순수였을까요? 열정 가득했던 믿음이었을까요?
“어느덧 중년--” 아, 그 다음은 읽기에 차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갈가리 조각난 보자기를 기우느라 바늘 끝에 자주 찔리건만, 이리저리 기운 처량한 조각보로는 미래를 덮을 수가 없다니요. 젊은 시절 내 꿈은 이토록 쓸모없는 누더기가 된 걸까요? 어느새 닳고 닳은 내 보자기 조각으로는 시들어가는 교회의 미래를 조금도 덮을 수 없는 걸까요?
고맙게도, 마지막 한 구절이 위로를 건네네요. “온전한 단풍잎 한 장은 광야를 덮을 수 있네” 아직 버리지 않고 가슴에 간직한 소중한 보자기 하나. 비록 단풍잎 한 장만하더라도 저 드넓은 광야를 덮을 수 있대요. 부스러기라도 좋다 했던 어미의 믿음이 딸을 고쳤잖아요. 초등학교 입학식 날 가슴에 품었던 손수건 한 장처럼, 비록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가슴 한 구석에 나만의 보자기 하나는 온전히 간직하며 살기로 해요. 그러면 광야 하나쯤은 너끈히 덮을 거예요.
예수님도 그러셨잖아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마 17:20).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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