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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세상의 등뼈/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 정끝별, <세상의 등뼈>


연애 시절에 누구나 하는 경험이겠지만, 기차 안에서 잠든 아내의 머리에 어깨를 빌려주고 한참을 정자세로 버틴 적이 있었습니다.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했었지요. 누군가에게 기댈 존재가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 기댈 수 있기에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의 사람 인(人)자가 그런 의미 아니던가요?


갈 곳 없는 이가 언제든 안길 수 있는 품, 대가를 따지거나 손익을 계산하는 일 없이 베푸는 돈, 사랑으로 촉촉한 입술, 지친 머리 기댈 수 있는 어깨… 상처 받기 싫어서 적당히 계산하는 피상의 관계 속에서 다른 이의 상처에 내 눈물을 대주며 대신 아파하는 것, ‘내가 밥이냐?’라고 묻는 사람들 속에서 기꺼이 밥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 사랑은 대주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문득 부실한 등뼈가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교회가 누구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세상의 등뼈가 되길 빕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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